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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레길 걷기(남파랑길)~

지난 주말에는 남파랑길을 혼자서 다녀왔는데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남파랑길은 부산에서부터 해남 땅끝마을까지 1,470km를 걷는 길이다.
 
일요일 아침 8시에 고속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녹동 터미널에 내린 시간은 12시 40분..
남편이 요즘 협회에서 중요 직책을 맡아 바빠진 관계로 같이 다닐수가 없어 이제부터 시간
날때마다 혼자서 걸어보기로 했다.
다른 코스들은 KTX가 가능한 구간이어서 새벽 5시에 타고 내려가 한코스 걷고 저녁에 다시 돌아오곤 했는데
이제는 KTX로 갈수있는 구간이 지나버려서 중간에서 혼자 자고 이틀을 걸어보기로 한 것이다.

 
위 지도는 71코스를 6% 걷다가 스크랩 한거고 71코스는 21.79km ..
이 거리가 오늘 혼자 걸어야 할 거리다.
마지막 지점에 썬벨리라는 리조트가 있어서 "썬벨리를 향하여 아자~" 하며 기분좋게 출발했다.
 

이런 저수지를 서너개 지나갔다. 하늘은 맑고 바람도 솔솔 불어 주었다.
 

조금 가다보니 이런 건물이 나왔다. 주차장도 한산하고 도로를 따라 걷는데 사람은커녕 차 한대도 지나지 않는곳에
이렇게 큰 건물이 왜 여기에 있는거지? 누가 관리를 하는걸까? 뭘 하는 곳인지 궁금증이 생겼다.
조금 더 가다보니 큰 병원도 있었는데 시골에 노인분들만 살다보니 응급실 전화번호가 크게 붙어 있었다.
 

농로길을 오래 걷다보면 완전 적막하다..
요즘은 시골길이 다 이렇게 포장이 되어 있어서 땅을 밝고 지나는 일이 드물다.
농사일을 다 기계로 하기 때문에 농기계들이 지나 다녀야 하니 모두 포장되어 있는 것이다.
 

도덕면에서 배도 고프지 않은데 음식점 문이 열린 집이 있어 들어갔다.
여기서 먹지 않으면 끝날때까지 물 한병 살곳이 없기 때문이다.
가끔 남파랑 걷는 손님들이 오곤 한다며 아주머니께서 반갑게 맞아 주셨다.
늦게까지 걸으려면 배가 든든해야 한다며 밥을 더 주시는데 이 한 공기도 다 먹지 못했다.
초반부터 지쳐서 물을 많이 마셨더니 밥맛이 사라진거였다.
게다가 남편이 같이 오지 않아 배낭 무게가 무겁다보니 어깨가 너무 아파 한시간에 한번씩 쉬며 걸어야 했다.
 

옥수수 밭을 지나다보니 풀들과 같이 자라는 옥수수들이 보였다. 풀을 뽑아줄 인력도 없거니와 옥수수를 그냥
한꺼번에 뿌려서 심은건지 빼곡하게 자라고 있었다. 저 풀들을 뽑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걸었다.
 

고추밭은 완전 질서정연하다. 고추나무키가 자라는대로 실로 고정을 시켜 주었는데
자라는대로 4번째까지 고정을 시켜 주었다.
이집 아주머니의 성격이 무척 깔끔하실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곳을 지나는 시간은 오후 4시다. 여기까지 오는동안 거의 사람을 볼수가 없었는데 바닷가에 사람들이
20여분 계셨다. 길옆에 전동차와 실버카들이 줄지어 있는걸 보니 마을 노인분들이 양식장에 뭘 잡으러 나오신거
같았다. 그분들과 얘기를 한마디도 안했지만 마을에 사람들이 있다는게 이상하게도 안도감이 생겼다. 
 

여기서부터는 임도를 걷게 된다. 혼자서 임도로 들어서려니 기분이 내키지 않았다.
그래도 길지 않겠지 싶어 걷기 시작했는데 무려 50여 분을 혼자서 임도를 지나가야 했다.ㅜㅜ
새들 지저귀는 소리가 쉴새없이 들렸는데 같이 걷는이가 있었다면 그 지저귐을 즐기며 걸었을 것이다.
이틀 걷는중에 젤 긴장하며 힘들게 걸은 구간이 아니었나 싶다. 
높은 산속 임도가 아니고 바닷가쪽 임도라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 길을 걸으며 다시는 혼자 내려와 걷지 않으리라 다짐을 했다.
 
 

 
임도를 걷는 도중에 스탬프가 왔다.
한 코스마다 80%를 걸으면 스탬프를 받을수가 있다.
앞으로 20%만 더 걸으면 된다는 희망이 생겨서 열심히 걸어 임도를 빠져 나갔다.
산에서 벗어났을때 그 자리에 앉아 한참을 쉬어야 했다.  빠른 걸음으로 임도를 지나와서
많이 지쳐버렸던거다.
 

오후 5시 59분 드디어 썬벨리 리조트에 도착했다.
여기까지 걷는동안 남편이 전화를 서너번은 한거 같다. 그때는 잘 걷고 있는지 궁금하다며 전화를 했는데
나중에 집에 왔을때  ''집에 있는 사람 불안하게 그렇게 혼자 다니고 싶냐?'' 고 하면서
걱정을 많이 한 눈치였다.ㅋ 위에 임도를 혼자 걸은걸 알면 진짜 '정신나간여자' 라고 엄청 화를 낼 것이다.
 
 

썬벨리에서 보는 일몰이 환상이라고 해서 기대를 했는데 수평선에 구름이 많이 껴서 좀 실망이었다.
하지만 혼자만의 시간을 만끽하며 보낸 행복한 하룻밤이었다.
 

월요일 아침 5시 반쯤 출발하려고 했는데 비가 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계획에 차질이 있으면 안되니까 비옷을 입고 이곳에 선 시간은 6시 15분..
비를 맞으며 걸을 생각을 하니 좀 내키진 않았지만 비가 그치길 기다릴수는 없었다.
 

고흥만 방조제를 우비입고 걷기 시작했다. 저 끝이 안보이는 곳까지는 2.7km 
이런 길을 또 언제 걸어보나 싶어 즐기기로 했지만 걸어도 걸어도 끝이 안나더라.ㅜㅜ
처음부터 빡센 시작이었다. 비만 안 왔어도 사진찍으며 여유있게 지나갔을거다.
 

방조제를 지나서 이정표를 보니 2.7km가 41분이 걸리다고 써 있는데 난 30분에 통과를 했다.
얼마나 빠른 걸음으로 지나왔는지..ㅎ
 

 
72코스가 14.9km인데 방조제를 지나니 이미 22%가 지나있다.
 

걷다보니 바다로 이어지는데 너무 이쁜 바닷가인데 쓰레기들이 밀려와 눈살을 찌뿌리게 한다.
시골에 노인분들만 계시니 이 쓰레기들을 수거해 소각하는일은 엄두가 안날거 같긴하다. 가는곳마다
이런 풍경을 보노라면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다는게 느껴져 한숨이 절로 나온다.
쓰레기 문제는 둘레길 걸으며 항상 느끼는 아쉬움이다.
 

고흥에 바닷가 시골마을을 다 걸어서 지나가고 있다. 여기는 상촌리..
이쪽은 가는곳마다 마을이 좀 부유해 보였는데 농사 외에 또 다른 수입원이 있는건지 궁금해졌다.
 

끝없이 늘어선 길.. 하지만 임도가 아니어서 기분이 좋다.
양쪽에 푸르른 농지들 그리고 멀리 바다가 보이는 마을..
그냥 아무 생각없이 걷는것도 힐링이 된다.
 

작년에 남편이랑 걸을때 모가 심어지는 과정부터 몇 cm씩 자라는걸 매주 걸으면서 지켜 봤었는데..
그로부터 다시 1년이 지났다는 거네. 꾸준히 걷다보니 이제 남파랑길도 거의 막바지에 다다랐다.
 

 
신흥리 복지회관에서 한참을 쉬다가 다시 걷기 시작..
정류장에 한 여자 아이가 가방을 메고 서서 날 보자마자 인사를 했다. 반갑게도..
버스를 기다리냐고 했더니 스쿨버스를 기다린다고 했다.
두원 초등학교에 다니고 전교생은 30명이 조금 넘는다고 했다.
걸을때마다 주말에 걸어서 아이들을 눈씻고 찾아봐도 없었는데 월요일에 걸으니까 어린 아이를 볼 수 있었다.
시골마을에 아이들이 있다는건 뭔가 희망을 보는것 같다.
우리가 어릴때는 등교할때 시골학교 교문에 아이들이 바글바글 들어가지 않았던가.
그런데 지금은 시골학교들이 하나둘 없어지고 도시의 학교들마져 아이들이 매년 줄어들고 있으니
인구문제가 정말 심각할 지경에 이르렀다. 
부부가 애를 둘은 낳아야 애국자라고 하던데 둘은 커녕 요즘 아이들 결혼을 해도 애를 낳을 생각을 안하니
진짜 어떤 대책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수국이 한아름 피어있는 모습.. 이곳에서 사진을 찍다가 그만 코스를 이탈해 걸어나갔다.
혼자 걸을때는  GPS를 바로 확인하는 버릇이 있어 얼른 뒤돌아가 앞에 보이는 길로 가서 바다로 이어졌다.
 

내당리 복지회관에서 쉬고 있다.
지나가는 마을마다 쉼터가 잘 마련되어 있어서 걷다가 지치면 편하게 쉴수 있어 좋다.
 

 
저 앞에 오시는 할머니께서 어디까지 걸어가냐 어디서 왔냐 궁금한게 많은지 계속 질문을 하셨다.
우리 엄마도 실버카를 밀고 다니시기 때문에 엄마 생각이 났다. 요즘 시골마을은 8~9십대가 대부분이어서
실버카나 전동차가 노인분들에게 필수인 듯 하다.
 

 

72코스 끝난 지점은 대전 해수욕장이었는데 여기서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오늘 걷기를 마칠때까지만 비가 멈춰주길 간절히 기도하며 걸었는데..
 

고흥 바다는 대부분 뻘로 이루어진 곳이 많았는데 이런 해수욕장은 이곳에서 보기 드문 풍경이다.
 

73코스를 출발하려고 나서는데 노인일자리 나오신 동네 할머니들이 이렇게 앉아 계셨다.
사진찍은 맞은편에도 이정도 인원이 앉아계셨는데 비가와서 앉아 계신건지 아니면
항상 이렇게 놀러 나오시는건지.
내가 사진을 한장 찍겠다고 했더니 "우리가 이뻐서 찍으요?" 하며 특유의 전라도 사투리로 말씀하셨다.
어찌나 귀여우시던지 ㅎㅎ 모두 건강하세요..
이분들을 보면서 20여년 후 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푸르른 참깨밭.. 농부들은 이렇게 잘자라는 농작물들을 보면 흐뭇하시겠다.
비가 온 후라 더 싱그럽다.
 

반면에 손이 안가는 이 넓은 땅들은 풀들의 차지다. 갈수록 시골 땅들이 이런 풀들 세상이 되어간다.

농사지을 사람이 없으니 매년 쉬는 농지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고흥군이 인구문제가 심각하여 인구유치를 위해 많은 연구를 하고 있다고 했다.
 

여기는 예회마을.. 마을마다 이런 쉼터가 자리하고 있다.
특히 요즘은 여름이라 아침 저녁으로 농사일을 잠깐씩 하고 낮에는 여기에 모여 시간을 보내곤 하셨다.
저 안에는 TV도 있고 바둑판도 있고 에어컨도 있고 동네 분들의 만남의 장소로는 최상일거 같다.
 

 
아침 6시 넘어서면서부터 걷기 시작했으니 지금 지칠대로 지쳐있는 상태다. 
위에 지도처럼 안으로 들어갔다가 나오는 구간이 있었는데 여기가 장난 아니었다. 거의 4~50분이나 걸렸는데
땡볕에 이곳을 걷고 있었다. 아침에 비가 오락가락해서 제발 끝날때까지 비가 안오게 해달라고 기도했더니
그 기도가 너무 빡셌던가 보다. 햇볕이 아주 쨍쨍 내리쬐다 못해 이글이글 타고 있었다.
멈춘지점에 팔각정이 있어서 얼른 걷고 쉬어야겠다 싶어 꾸역꾸역 갔는데 오른쪽(보라색)으로 
이어지는 코스를 지나쳐서 10여분을 더 간 거였다. 헐~

이 뙈약볕에 10분을 돌아 나갈 생각을 하니 짜증이~ ㅜㅜ
 

팔각정에 앉아서 쉬며 앞 바다를 찍은 사진이다.
체력이 바닥난 와중에 눈앞에 펼쳐진 바다 풍경은 왜이리 아름다운 것인지.
팔각정에는 이 동네 노인분들이 모여 술판이 벌여져 있었다.
나한테 막걸리를 권하시는데 진짜 한잔 마시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았다.
하지만 그건 내 스타일이 아니기에 사양하고 박카스만 한병 얻어 마셨다.
거기서도 어디서 왔냐 부터 호구 조사까지 한참 질문을 받고 다시 뒤돌아 나와 걷기 시작했다.
 

위에 팔각정에 쉬고 있을때가 12시 21분이었는데 여기는 금성마을을 지나 1시 11분이다.
여기까지 쉬지않고 50분을 계속 걸었다. 평상시 50분 걷는것과 두배로 인내가 필요한 길이었다.
이날 걸음수는 45,000보를 지나고 있었고 불타는 태양은 머리위에 있었고..
여기서 스탬프가 울리길레 바로 금성 마을회관으로 뒤돌아갔다. 더 걸을 기운이 1도 남아있지 않았다.
이틀동안 튼튼한 내 다리에 다시한번 감사했다.
 

여기가 금성마을이다. 이 사진 맞은편에는 위에 예회마을과 같은 쉼터가 있는데 사진을 못 찍었다.
너무 지쳐서 정신이 없었고 여기 도착하자마자 고흥읍으로 나갈 택시를 불렀다.
그 쉼터에 마을 어른들이 모두 모여서 수다 삼매경에 빠져 계셨는데
날 보더니 또 질문이 계속 이어졌다. 이 순수한 시골 분들 때문에 고흥에 대한 이미지가
너무 정겹게 남아있다.
뭐라도 챙겨주려 하시고 도와주고 싶어 하시는 어르신들 때문에 행복한 둘레길 걷기를 잘 마무리했다.
몇년후 내 체력이 따라주지 않을때 난 이날을 많이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고흥 터미널이 어찌나 낙후되어 있던지 이용하는 사람들이 적어서 리모델링을 안하는 것일까?
고흥을 걸으며 내가 사회에 나와 처음 사귄(고흥이 고향이라 했던 친구) '이정랑'이 보고 싶어졌다.
6개월정도 함께 근무했는데 마음이 무척 따듯한 친구여서 지금까지도 생각이 나곤한다.
내가 학교에 가게 되고 그 친구는 직장 생활을 계속 하면서 연락이 두절되었는데 찾을 방법이 있었으면 좋겠다.
정랑이는 어디서 어떻게 나이들어 가고 있을까.. 방송국에 편지라도 보내봐야 하나. ㅋ
 
임도를 지나며 다시는 혼자 내려가지 않겠다고 다짐했고 뙈약볕에 쓰러질뻔 할때까지 걸었는데
집에 돌아와 다 잊어버리고 이번주에 다시 내려가 걸으려고 한다.
표를 또 예매 했다고 했더니 남편이 난리가 났다. 집에서 걱정하는 사람 생각은 왜 안하냐구.
그래서 요즘 주부들 바람난 사람들도 많고 명품사느라 빚더미 위에 앉아 있는 사람도 많다는데
이런 건전한 취미를 갖고 사는 마누라한테 고마워하라고 했다.
이궁~ 나이먹은 아줌마를 누가 데려간다고 저러는건지. ㅋ
 
그런데 오늘 아침 남편이 약속을 취소했다며 자기것도 예매를 해 달라고 했다.
마누라 혼자 보내놓고 신경쓰느니 같이 내려가서 걷는게 마음이 편하겠단 생각을 했나보다.
나야 좋지 뭐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