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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설 연휴에 다녀온 여행~

 

이런저런 일들 신경쓰며 살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2월도 하순이다.

혹독한 추위가 우리나라에 찾아왔던 설연휴에 우리는 유럽여행중이었다.

제대한지 얼마 안된 막내가 여기가 철원인가 착각될만큼 춥다고 가족톡방에 올린글을 보고

어지간히 추운가보다 짐작만 했었다.

하늘은 티없이 맑고 눈에 보이는 마드리드시내의 건물들은 하나같이 럭셔리한 것들이어서

평범한 건물을 찾기가 어려웠던거 같다.

스페인은 영하는 아니었지만 습도가 높아서 많이 춥게 느껴졌었다.

남쪽이라 따듯하겠지 싶어서 얇은 옷들을 가져갔는데 여행내내 추워서 가져간 패딩 조끼를 벗지 못했다.

간곳이 많아서 최대한 짧게 몇군데만 한두장씩 올려보려고 하는데 내 관심 위주라서

보는 사람에 따라 지루할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는 톨레도..

마을 전체가 거대한 하나의 문화유적이라 톨레도에서는 집의 외관을 마음대로 고칠수가 없다고 한다.

그만큼 문화적으로 가치가 있는 곳이라고.. 문화적으로도 그렇지만 그렇게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려면

당연히 보존을 해야 맞을것 같다.

 

 

톨레도 대 성당은 처음에 무슬림들이 모스크를 지은 곳이었다. 그런데 가톨릭이 들어와 그 모스크를 부수고

1224~1493년까지 200여년동안 다시 지어진 곳이 톨레도 대성당이다.

모스크를 허물어 그 자재를 재활용해서 지었고 고딕양식으로 지었다고 한다.

고딕성당은 하늘에서 보면 십자가 모양이고 모든 대성당들은 예루살렘을 향해 지어지고

예루살렘을 향해 기도를 한다고 한다.

 

 

성당내부는 입이 떡 벌어질만큼 어마어마한 크기였고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를만큼 화려했는데

찍은 사진들은 우리 가족들만 볼수 있는 공간에 차곡차곡 저장해 두었다.

톨레도 대성당안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공간은 바로 이 장소였었다.

천정 한 부분에 창문을 내고 거기에 천사들과 성인(?)들이 앉아 있는 모습..

빛을 통해 입체적으로 더 돋보이게 만들어서 환상적인 공간으로 만들어져 있었는데 사진엔 그 느낌이

거의 표현되지 않아서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1200년대이면 13세기인데 그 옛날에 이렇게 완벽하게 조각하는 예술가들이 수두룩 했다는건가..

진짜 동서양사람들의 예술적 감각 차이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거 같단 생각을 했다.

 

 

내부에서 많은 사진을 찍었는데 성모님이 아기 예수님을 안고 있고 그 성모님 상을 천사들이 떠 받치고 있다.

사진 위쪽은 찬란하게 빛나는 빛을 표현했고 아래는 한 추기경님의 관이 놓여져 있었다. 

성당안이 이런 성화 작품들로 가득해서 눈을 뗄수가 없었다.

 

여기는 파티마 성지다. 남편이 기도하며  십자가의 길을 돌고 있다.

파티마 성지는 세계3대 성지중 한곳이고 가톨릭에서 공식적인 기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곳이다.

성모님이 발현한 장소는 세계적으로 몇 군데가 있는데 그중 유명한 성지를 가게 되어

촛불 봉헌을 하고 기도를 드리고 왔다. 

 

돌을 깎아서 타일을 놓는 작업을 하고 있는 동상..

2인1조가 되어 한 사람이 돌을 깎으면 옆에 있는 사람이 저 무거운 걸로 눌러 수평을 맞추는 작업을 표현한거다.

너무 작은 타일들이라 작업을 오랜 기간동안 무던하게 해야할것 같다.

차가 다니는 길도 이렇게 작은 타일로 이루어진 곳이 많았다.

우리나라에 없는 트램이 다니는 길..

평범해 보이지만 참 아름답게 느껴지는 길이었고 이 길도 역시 타일로 만들어져 있다.

이쪽은 남미쪽 사람들과 생김새가 흡사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수긍이 갔다.

과거에 스페인이 남미를 점령했을때 금은보화를 비롯하여 담배, 커피등 나중에는 감자, 고무나무

동식물 심지어 인디언들도 다 이곳으로 데려왔다고 한다.

여행하며 콜롬보스가 여기 사람이란걸 처음 알았다.ㅎ 그때는 스페인이 큰 강대국이었을텐데

어쩌다가 현재는 우리나라와 GDP가 비슷한 상황이 된 것인지 모르겠다.

 

여기는 세비아 대성당 안마당인데 머리위에 오렌지들이 주렁주렁 열려있다.

이곳은 가로수들이 모두 오렌지 나무였다.

이용씨가 부른 "종로에는 사과나무를 심어보자~" 라는 노래가 생각나더라.ㅋ

 

스페인은 이런 대성당이 119개가 있는데 '대성당'이란 '추기경이 미사를 보는 성당' 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스페인에는 추기경이 119명이라는 것인가? 허얼~

 

와~ 구석구석 이 디테일한 조각작품들 할말을 잃을 정도다.  얼마나 많은 땀과 정성이 들어갔을지..

천정부분만 해도 가는곳마다 다 달라서 계속 고개를 들고 한참 보고 있자니 뒷목이 아플지경이었다.

대성당안에 경당이 22개가 있었는데 귀족이 미사보는곳과 일반 서민이 보는곳이 따로 있었고

성가대실만 둘러보는데도 한참이 걸렸으니 그 대성당을 두어시간동안 얼마나 제대로 봤을지 모르겠다.

보면대의 앞뒤면만 살펴 보는데도 할말을 잃었고 내 눈에 마음에 담고 오기에 너무나 벅찬것들이었다.

 

대성당의 바닥은 한칸한칸이 모두 추기경들의 무덤이라고 한다.

오랜세월동안 얼마나 많은 추기경들이 이 성당을 거쳐 갔을지 상상이 안된다.

이 나라에서 최고의 위인으로 여길 콜롬보스도 세비아 대성당안에 있었는데 4개의 왕조가 관을 메고 있었다.

(오른쪽은 콜롬보스 아들의 무덤)

참고로 스페인 왕은 사실 프랑스 왕가의 후손이라 한다.

카를로스 2세가 죽고 후사가 없어서 그 당시 왕위계승 전쟁이 일어났었다고 함.

결국 프랑스 왕가가 스페인 왕으로 1714년 9월 11일에 오게 되었으니

스페인 왕가가 아니라 프랑스 왕가의 후손들이라 할 수 있겠다.

 

여기는 '자하라 데 시에라' (에메랄드 마을) 라는 마을. 숨은 보석이라고 부르는 마을.

이곳은 물길따라 마을이 형성된다는데 주로 위쪽에 이렇게 예쁜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다.

한 귀족을 중심으로 성이 있고  성 아래에 그 귀족이 부리는 사람들로 마을이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멀리서 보기에 정말 그림같이 예쁜 마을이었다.

이곳 사람들은 대부분 올리브 농사와 포도농사를 지으면서 살아간다고 함.

쌀 농사도 짓긴 하는데 벼를 물에 불려서 비행기로 뿌리고 수확은 기계로 벼를 훝는다고 한다.

무슬림의 영향을 받아서 스페인 사람들이 쌀을 먹게 되었는데 라면 끓이듯이 쌀을 끓여서 먹는다고.

현지식 먹을때 보니 인도에서 처럼 날아다니는 쌀이었다. 찰기가 없는 푸슬푸슬한~

 

알함브라 성의 야경사진이다.

야경을 보고 다음날 알함브라 성을 돌아 보았는데 성이 얼마나 넓던지 그곳을 안내하는 전용 가이드가 따로 있었고

그 가이드들을 따라다녀서 어디가 어딘지 도무지 알수가 없었다. 좌우로 위아래로 계속 돌아가며 들어갔는데

침입자들이 들어왔을때를 대비해서 그렇게 만들었다고 했다.

 

들어가는 입구마다 문이 이런 모양(오른쪽사진)이었는데 무슬림들이 사는 건물의 문은 

모두 모스크의 지붕 모양이었다. 

알함브라성은 붉은 흙으로 만든 벽돌로 쌓은 성이라서 적색의 성이라고 한다.

이 주변에 붉은 흙이 많아서 그 자연재료로 벽돌을 만들어 성을 쌓았다고 한다.

그라나다는 712년 무슬림이 만든 마을이고 거기에 성을 지었는데 가톨릭의 침입을 막기위해

1200년대부터 성벽을 쌓기 시작했다고 한다.

 

1492년1월 2일에 가톨릭과 무슬림이 전쟁을 해서 가톨릭이 대승을 하고 이 성을 점령했다고 한다.

다섯나라가 힘을 합쳐 무슬림을 물리쳤다고 하는데 가이드의 얘기를 들으며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라는

음악이 생각났다. 슬픈 선율인데 무슬림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니 더 애잔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무슬림은 사막에서 온 사람들을 뜻하며 무슬림의 지도자는 '술탄' 이라고.

터키에서 보았던 술탄들이 살았던 거대한 건물들이 생각났다.

가이드는 절대로 '알함브라 궁전' 이 아니고 '알함브라 성' 이라고 주장을 하더라.

이 알함브라 성은 곳곳에 무슬림들의 지혜가 숨어있다고 가이드가 열심히 설명을 하는데

이날 너무 추워서 그 넓은 성을 덜덜 떨며 따라 다닌 생각밖에 안난다.

 

여기는  '까사밀라' 라는 건물이다. '까사'는 '집' 이란 뜻이고 '밀라'는 '성(姓)' 을 뜻한다.

그래서 '밀라씨의 집' 이란 뜻이다. 밀라씨가 가우디에게 부탁하여 지은 주택인데

가우디가 주택 작품으로는 마지막으로 지은 집이고 파도를 연상하며 지은 집이라고 한다.

벽면이 파도처럼 춤을 추는거 같다.

 

여기는 구엘 공원이다. 에우제비 구엘이라는 사람이(구엘은 귀족가문의 이름)

까르멜이라는 산 주변에 54,000평의 부지를 구입해서 가우디에게 건축을 맡겼다.

처음 용도는 부자들을 위한 전원주택단지를 지으려고 구입했다고 한다. 그런데 백평정도를 1개로 60개

분양을 하려고 했으니 2개만 분양이 되었다고 한다. 그 2개는 친구 뜨리아스씨가 받아서 1905년에 주택을 

지었다고 하고 나머지 58개는 미분양 되었고 후손들에게 유산이 되었다고 함.

 

나중에 시민들을 위한 공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후손들에게 시에서 구입해 구엘공원을 만들었다.

구엘공원은 가우디가 조성을 했는데 1900년부터 공원을 건축하기 시작했다고.

이후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공원이 되었으니 가우디의 천재성이 빛을 발했기 때문이다.

 

이 타일 조각들을 들여다보며 감탄감탄을 했다. 놀라운 감각이고 

어찌 이런 사고를 할수 있는건지 평범한 구석이 한군데도 없더라는..

완벽하게 들어 맞는 타일들이 모양도 다 제각각이라는게 놀랍다.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어서 감탄사만 연발하며 지나갔다.

 

가우디는 1852년에 태어났는데 몸이 건강치 않아 자연을 늘 관찰하는 아이였다고 한다.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난 가우디는 자연을 건축 소재로 선택하고 곡선을 이용하여 건물을 지었다고.

1874년에 건축사 자격증을 땄으니 22살에 땄다는 거네. 가우디가 평생 남긴 작품은 90여개라고하고

90개중 7개가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하였다니 세계1등 건축가라는건 당연한 결과이다.

 

사진에 두 건물은 관리실과 경비실이라고.

이런 멋드러진 관리실과 경비실이 세상에 또 있을까?

헨젤과 그레텔이라는 동화속에 나오는 과자건물을 형상화해 만들었다고 한다.

실제로 이곳에 있으니 동화속 마을에 앉아 있는것 같았다.

 

성가족 성당~

1882년 한 교수가 작은 성당으로 짓기 시작해서 1883년 가우디 31세때 이 성당을 이어서 짓기시작.

신고딕 양식으로 가우디가 다시 설계해서 지금까지 짓고 있다고 한다. 2026년 완공 예정이라고.

 

예수님이 동정 마리아의 배속에 잉태될때부터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할때까지

설경말씀이 벽면에 다 조각되어 있다고 보면 된다. 장면 장면마다 굉장한 정성을 기울여 만든 조각들이라고 하는데

아기 예수님을 조각할때는 병원에 가서 죽은 아기를 데려와 그 형상을 그대로 본떠서 틀을 만들었다고..

가우디가 생전에 얼마나 이 성당건축에 열정을 쏟았는지 느낌으로 와 닿았다.

우리가 가우디의 열정을 얼마만큼이나 이해할 수 있을까?

그의 관심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대충 둘러봐야하는 상황이 아쉬울 뿐이었다.

가우디는 공사중인 성가족 성당에 살면서 다른 성당으로 미사를 갔다가 돌아오는 과정에 교통사고를 당하여

돌아가셨다고 한다. 본인의 재산을 성가족 성당 짓는데 쓰라고 유언을 하셨다고 함.

이후 가우디의 설계대로 다른 건축가가 짓고 있고 현재는 관광수입으로 짓고 있다고 한다.

스페인을 가는 관광객이라면 다 거처가는 곳이니 관광수입이 엄청날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당 내부에 화려한 스테인드 글라스..

서쪽 스테인드 글라스는 석양이 질때 이렇게 붉은색으로 표현되도록 만들었고

동쪽은 반대로 해가 뜰때 푸른색으로 표현되게 만들었다고 한다.

우리가 해가 지는 시간에 이곳을 방문해서 특히 오른쪽(서쪽)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성당안에 세계 각나라를 대표하는 신부님들이 창문에 새겨져 있었는데 우리나라는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을

뜻하는 A.KIM이 새겨져 있었고 각 나라의 주기도문도 새겨져 있었는데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주옵소서.'

라는 한글을 보며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여기는 '키스의 벽' 이라고 하는데 유명한 곳인거 같았다.

사람들이 줄지어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사진타일을 4천장 모아서 만든 벽이라고 한다.

 

마지막날 저녁에는 바르셀로나 신.구시가지를 도는 야경투어를 했는데 1859년에 신도시를 건설했다고 한다.

19세기 중반이니까 마차가 다니던 시절에 신도시 건설 한거고 그래서 모두 일방통행길로 만들어졌다고.

구시가지는 기원전 3세기 부터 세워진 도시인데 지금도 손대지 않고 보존을 하고 있다니 대단한거 같다. 

조금만 오래되면 다 철거하고 뜯어 고치는 우리나라와 완전 대조적이란 생각을 했다.

 

 

여기는 이렇게 똥싸는ㅋ 인형이 행운을 가져다 준다고 해서 이런 가계가 있다.

유명인들 엉덩이를 벗겨서 만드는게 유행인데 요즘은 푸틴엉덩이 인형이 젤 잘 팔린다고 한다.

만들기만 하면 바로 매진 된다고하니 참 재밌는 일이다.

 

스페인은 한 나라안에 언어가 4개가 있다고 하는데 면적이 우리나라의 5배 정도 되는데 

쓰는 언어가 그렇게 많으면 좀 불편한 일들이 생길꺼 같다. 한 나라안에 언어가 4개라니..

바로셀로나는 까딸란어를 사용하고 그 언어로 교육을 하는데 다른 도시에서 전학을 오면 6개월정도

언어 교육을 무조건 받아야 한다. 의무교육 13년을 까딸란어로 배워야 하기 때문에

첨부터 배우지 않으면 학교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공식언어는 스페인어인데 바로셀로나에선 까딸린어를 쓰면서 독립을 주장하고 있다고 한다.

바로셀로나는 경제적으로는 독립해서 자치권을 얻었으나 정치적으로는 여전히 스페인이다.

하지만 여기 사람들은 스페인에서 독립하고자 계속 독립시위를 하고 있다고.

한 나라가 이렇게 분열이 되다니 참 위험이 일이네.

 

 

아부다비 공항에서 본 터번 쓴 남자들~

이 사람들은 터번을 하나의 패션포인트로 여기는거 같다.

대부분 옷색에 맞게 코디하는것이 아니라 눈에 확 띠는 색으로 쓴다.

어떤이는 완전 새빨간 터번을 썼는데 정말 강렬한 인상으로 다가왔었고

어떤 사람들은 세련되고 귀티가 나서 자꾸 다시 돌아보게 되던 터번 쓴 남자들~

을 마지막 사진으로 여행기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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